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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항공박물관 체험, 항공 역사 전시실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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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양의 항공 역사

하늘에 연을 띄우다

(1) 인간, 새들의 자유에 도전하다

인간이 최초로 하늘에 띄운 것은 바로 연이었습니다. 연은 새가 하늘을 나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만, 바람을 이용해 물체를 하늘 높이 띄우는 것으로써 비행기의 기본적인 원리를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비거

(2) 하늘을 나는 수레, 비거

16세기 조선 시대에는 임진왜란 때 사방이 포위된 진주성의 소식을 밖으로 전달하기 위해 '정평구'라는 사람이

하늘을 나는 수레, 즉 '비거'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비거는 큰 날개를 가지고 바람을 이용했고, 사람이 탈 수 있는 자리가 충분히 있었다고 합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3) 새를 연구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어떤 물체든지 공기를 잘 활용하면 공기가 그 물체에 주는 힘으로 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는 마치 새가 날개를 이용해 하늘을 날고, 배가 물 위로 떠가는 원리와 똑같습니다. 새는 수학적 법칙에 따라 동작하는 기계이며, 그 모든 운동을 인간의 능력으로 구현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열기구

(4) 최최의 유인 비행, 몽골피에 형제의 열기구

몽골피에 형제는 어느 날 굴뚝에서 위로 올라가는 연기를 보다가 실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1783년, 불 위에 종이봉투를 올리면 상승하는 연기와 함께 종이가 하늘로 올라간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비행선

<인간, 중력 극복에 성공하다>

(5) 체펠린의 비행선

 

조지 케일리

<항공의 아버지, 조지 케일리>

영국의 조지 케일리는 비행체에 미치는 힘을 뜨는 힘과 앞으로 나가는 힘으로 구분해 생각한 최초의 인물로 움직이지 않는 날개의 원리를 확립하는 데 강력한 공헌을 하였습니다.

 

날개

(6) 날개를 갖고 바람을 이용하다

 

오토 릴리엔탈

<'비행인간'으로 알려진 항공의 개척자, 오토 릴리엔탈>

오토 릴리엔탈은 '비행기를 발명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하늘을 나는 것이 중요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라이트 형제, 유인동력비행기

<라이트 형제, 드디어 비행기 시대를 열다>

(7) 라이트 형제의 유인동력비행기

라이트 형제의 실험 성공은 '사람이 조종할 수 있는 동력기계장치를 타고 하늘을 최초로 날았다.'는 역사적 대사건으로 당시 비행선을 통해 항공산업에서 앞서 나가던 유럽을 제치고 미국이 항공산업을 선도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24.02.16 - [분류 전체보기] - 국립항공박물관 위치와 주차, 체험, 도서관 안내

 

국립항공박물관 위치와 주차, 체험, 도서관 안내

안녕하세요? 러닝그로업우리입니다. 오늘은 수수께끼로 안내할 장소를 알려드려 보겠습니다. 실내라서 비가 와도 날씨에 구애받지 않아서 좋습니다. 야외입니다. 독서도 할 수 있고 즐길거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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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

(8) 제1차 세계대전

인간의 도전 정신이 안타깝게도 무기가 되었습니다.

(9) 항공수송의 시작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유럽에서는 본격적으로 여객기가 탄생하였고 정기항공수송을 시작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10) 제2차 세계대전 : 항공력이 국가의 운명을 결정하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군용기는 정찰, 전투, 폭격뿐만 아니라 병력이나 군수 물자의 수송에도 활용되어 전투기, 폭격기, 정찰기, 수송기 등 임무별로 분화되었습니다. 특히 폭격기는 장거리 비행과 대형화가 이루어져 원자폭탄 투하 등의 전략 폭격이 가능해졌습니다.

 

또한 항공기를 함정에 탑재하여 필요한 지역으로 운반하는 항공모함이 등장함으로써 언제 어디서나 대규모의 항공전력을 운용할 수 있게 됨으로써 항공기는 전장의 보조 수단이 아닌 결정적인 수단이 되었습니다.

 

각국의 전투기 생산량
각국의 주요 전투기

(11) 냉전 시대의 항공력 경쟁, 민간항공의 밑거름이 되다

군비 증강만이 목적이었던 동서 진영의 치열한 항공기술의 발전은 점차 첨단화, 정밀화, 세밀화 되었고, 그에 따른 전문 인력의 양성도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또한 신기술이 발명되어 군사적 기밀의 가치를 알게 된 구식 기술들은 자연스럽게 민간항공산업으로 합류되었고, 이러한 현상들은 1960~1970년대 민간항공의 발전을 가속하는 토대가 되었습니다.

 

국립항공박물관, 항공기술의 실용화

(12) 항공기술의 실용화

민간항공산업으로 유입된 항공기술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매우 편리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임플란트, 태양전지판, 정수기, 화재경보기, 화염 감지 카메라, 의료용 영상 진단기, 디지털카메라 센서, 접이식 유아차, 차량용 ABS 시스템, 자동차 블랙박스, 차량용 네비게이션, 유아용 카시트 등이 있습니다.

 

2. 한국의 항공 역사

 

대한민국은 시련의 순간에도 가장 큰 꿈을 꾸었기에 오늘날 전 세계 어디든지 마음껏 날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임시정부의 항공독립운동가, 대한민국의 하늘을 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항공독립운동가

(1) 일제의 중국 침략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항공독립운동가들

 

1931년 만주를 침략한 일제는 1937년 7월 7일 본격적인 중국 침략을 단행하며 중일전쟁을 일으켰습니다. 일본의 비행대는 중국 본토를 공습하며 위력을 발휘하였습니다. 이에 중국은 신예 비행기를 도입하고, 비행사 육성을 급히 추진해 1937년 10월 윈난 육군강무학교에 중국 전역의 항공학교들을 통합한 항공과를 출범시켰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독자적으로 군사력을 만들 수 없었기 때문에 미국이나 중국, 소련 등에 있는 군관학교나 육군항공학교 등에 청년들을 보내어 교육을 받게 하였습니다. 한인 청년들은 비행기 조종사나 항공기술자가 되기 위해 각국의 항공학교를 졸업했고, 각자 졸업한 국가의 군대에 들어가 대일본 전투에 참전해서 실전 경험을 쌓았습니다. 이들이 어디에 소속되어 있든 일본과 싸워서 이기는 것이 조국의 독립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한인비행학교

(2)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항공독립운동과 한인비행학교 창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20년을 '독립전쟁의 해'로 선포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독립전쟁을 승리로 만들기 위해 비행대 편성과 비행사 육성을 최우선 과제로 두었습니다. 군무총장 노백린은 '독립전쟁의 승리는 하늘을 지배하는 자에게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노백린이 미국에서 처음에 하려는 일은 비행기 구매 자금을 마련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미국에서는 조국의 독립을 열망하는 동포들이 안창호, 이승만을 중심으로 '대한인국민회'를 결성했고, 대한인국민회는 1년 전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는 데 대부분의 자금을 지원하였을 정도로 열성적이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캘리포니아를 찾았던 노백린은 대한인국민회 산하의 청년 단체인 '청년혈성단' 단원들이 이미 조국 독립에 투신하고자 비행술을 배우고 있는 모습에 깜짝 놀라게 되었습니다. 이에 노백린은 현지에서 비행대를 만드는 것으로 방문 목적을 변경하게 됩니다.

 

여기에는 쌀농사로 엄청난 부자가 된 김종림이 훈련기 구매, 활주로 부지 제공 등 비행학교 설립 비용 전액을 지원해 준 것과 청년혈성단원들에게 비행술을 가르치고 있던 미국인 '프랭크 브라이언트'가 조선인의 애국심에 감동해서 교관으로 합류하게 된 것이 큰 동력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노백린을 중심으로 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굳은 의지와 김종림을 중심으로 한 대한인국민회의 열렬한 지원, 일본에 대한 분노와 구국의 신념으로 강하게 뭉친 청년혈성단원들의 굳은 결기가 모여 1920년 2월 20일 드디어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무부 산하의 한인비행학교가 창설되었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한인비행학교 노백린(가운데)과 공군들의 모습

(3) 대한민국 임시정부, 공군을 설계하다

 

설립 초기 의욕적으로 시작하였던 비행학교가 재정난으로 문을 닫게 되자 항공력을 활용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무장 투쟁이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1942년 일본이 미드웨이 해전의 패배로 태평양에서 제공권을 잃게 되고,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에서 점차 밀리게 되자 충칭에 자리 잡고 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도 전열을 재정비하고, 일본과의 전쟁에 들어가기 위해 광복군의 창설을 서두르게 되었으며, 특히 광복군 내 공군 설립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1945년 3월 군무부는 임시의정원(현 국회)에 제출한 '한국광복군 건군 및 작전계획'에서 처음으로 '한국광복군 비행대'의 편성과 작전을 언급하였고, 이에 의하여 3월 30일 제정된 '대한민국 임시정부 잠행중앙관제'에서 처음으로 '공군'을 명시했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미국은 미군 전략정보처 OSS(현 CIA 전신)와 함께 특수 훈련을 받은 광복군을 한반도로 진입시켜 게릴라 전술을 펼치게 할 '독수리 작전과 냅코 작전'을 준비하였으나 일본의 갑작스러운 항복으로 인해 결실을 보지 못했습니다.

 

스탠더드 J-1

<조국의 독립을 위해 날아오는 '스탠더드 J-1', '대한민국 임시정부 한인비행학교'에서 훈련기로 사용하였던 2인승 복엽기>

 

우리나라 공군의 활약

(4) 한국전쟁과 공군의 활약

전투기 1대도 갖추지 못했 공군은 창군 9개월 만에 한국전쟁을 맞게 되었습니다. 전쟁 발발 일주일 후인 7월 2일

미군으로부터 F-51D(무스탕) 전투기 10대를 인수하였고 바로 이튿날 전투 출격을 개시하였습니다.

 

영화 '빨간 마후라'의 배경 - 승호리 철교폭파작전

UN 공군의 일원으로 총 14,163회의 단독 또는 연합·합동 작전에 참여하여 승호리 철교폭파작전, 평양 대폭격 작전, 강원도 고성 351고지 전투 항공지원작전 등의 임무를 완수함으로써 대한민국을 수호하는 데 공헌하였습니다.

 

남한과 북한 공군 전투력 비교

(5) 일제 강점기 민간항공산업

 

해방 직후 어수선한 정국에서도 민간항공사업을 바로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일제 강점기 조선 총독부의 통제 아래에서

한국인들이 운영하는 다수의 민간항공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국영 대한항공공사 → 민영 대한항공>

대한국민항공사(KNA)의 파산으로 인하여 민간항공사의 명맥이 끊기자 정부는 1962년 6월 19일 국영 대한항공공사를 출범시켜 관 주도의 민간항공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대한항공공사는 초기에 의욕적으로 사업을 펼쳤지만 노후 항공기의 교체 실패와 경영진의 방만한 운영 등으로 인해 한계에 부딪혔고, 결국 1969년 2월 (주)대한항공으로 사업권을 넘겨야 했습니다.

 

정부는 1969년 2월 27일 민간 기업인 한진상사와 계약을 체결하였습니다. 한진상사는 3월 1일 (주)대한항공을 출범시키고, 3월 6일 김포공항에서 인수식을 개최하였습니다. 당시 대한항공의 보유 비행기는 총 8대로 아시아에 존재하던 11개 항공사 중 11위에 해당하는 초라한 규모였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이 날 수 있었던 것은 날개가 있어서가 아니라 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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